국가 컨트롤타워·투자계획 강력하게 만들고 부처간 협업 부족 등 해묵은 문제부터 개선해야
탄소중립 목표 이루면서 산업경쟁력 유지하려면 규제로는 한계.. 체계적·단계적인 적응 필요
시민사회·어린이·청소년에 끊임없는 교육 통해 수용성 높이고 시민의 문화적 힘 뒷받침돼야
최근 영국 콘월에서 열린 G7(주요 7개국) 정상회의. 코로나19 때문에 2년 만에 만난 주요 국 정상들은 감염병 대응, 인권 등과 함께 탄소중립을 핵심 주제로 다뤘다. 주요 국 정상들은 2050년 탄소중립 목표를 달성하려면 각국의 노력과 함께 글로벌 공조와 룰 세팅이 필요하다는 데 뜻을 같이 했다. 탄소중립이 전 산업계와 국가, 개인에게 발등의 불로 떨어졌다. 에너지부터 산업 방식, 생활과 이동 형태까지 전면적인 변화를 요구하고 있다. 산업계와 학계, 연구계 전문가들은 탄소중립을 위한 구체적인 액션에 나설 것을 주문했다.
<대담자> 민동준 연세대 교수·그린철강위원회 위원장 박현 포스코 전무(환경사업실장) 신경호 과학기술일자리진흥원장·대한금속재료학회장 유영숙 기후변화센터 이사장·전 환경부 장관 장웅성 인하대 융합혁신기술원장 정은미 산업연구원 성장동력산업연구본부장 정진호 카텍에이치 대표 안경애 디지털타임스 ICT과학부 부장
◇장웅성= 2100년까지 기후변화로 인한 피해구제에만 2800조원 가량이 들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미 바이든 정부 출범 후 강대국들이 경쟁적으로 2050 탄소중립 선언을 내놓으면서 대규모 민관투자가 돌이킬 수 없는 흐름이 됐다. 우리도 민관이 혼연일체가 돼 변화에 나서야 한다. 영국, 미국 등 선진국들은 2050년까지 탄소중립을 이루기 위해 관련 연구를 매우 구체적으로 끝냈고 국민들과도 컨센서스를 이뤄가고 있다. 우리나라는 이산화탄소 다배출 국가다. 국가 전체 배출양과 국민 1인당 배출양이 모두 많다. 국민 1인당 쓰는 철강 양도 많다. 선진국은 1970~80년대에 최고치를 기록하고 낮아지는데 우리는 여전히 1인당 1300㎏을 쓴다. GDP(국내총생산)에서 제조업이 차지하는 비중이 28% 가량에 달하고, 제조업 수출로 먹고살기 때문이다. 최근 전세계 자본도 탄소중립과 ESG(환경·사회·지배구조) 영역에 집중되고 있다. ESG를 실천하지 않으면 시장에서 바보 취급을 당하는 시대가 됐다.
◇민동준= 이제 탄소중립을 위한 거대담론을 넘어 실천을 준비할 때다. 지금까지는 세계적으로 표준화된 화석에너지 가격 체계가 적용됐지만, 그린 에너지는 국가간 생산환경에 따라 차별화가 일어난다. 그런 점에서
제조업 중심의 우리나라가 국가 경쟁력과 탄소중립을 동시에 유지하려면 5000만명의 생활과 제조업을 유지할 수 있는 그린 에너지원을 찾는 게 급선무다. 박정희 대통령이 1960년대의 경제발전 5개년 계획을 통해 고속도로와 석유, 제철, 조선, 자동차 등 현재의 주력·기간산업을 만들었듯이 국가 대개조 관점에서 접근해야 한다. 대통령이 탄소중립을 선언한 만큼 그에 걸맞은 담대한 계획과 인센티브, 인프라 투자에 나서야 한다.
◇유영숙= 백척간두에 서서 위태로운 심정으로 해도 힘든 게 탄소중립이다. 유럽은 우리보다 한참 앞선 1990년 탄소배출의 정점을 찍은 후 계속 줄이고 있다. 미국의 탄소배출 정점은 2007년, 일본은 2013년이다. 우리는 2018년이다. EU가 탄소배출 정점에 도달한 후 60년 만에 걸쳐 달성하고자 하는 탄소중립을 우리는 절반의 기간 안에 도달해야 한다. 대한민국 존폐의 문제인데 너무 느슨하다.
◇정은미= 탄소중립이란 방향에 맞춰 우리 정부도 높은 목표를 수립했다. 갈 길이 멀고 바쁜 만큼 구체적인 수단을 서둘러 만들어야 한다. 특히 플레이어들이 확신을 가질 수 있는 수단이 필요하다.
먼저 탄소중립을 위한 국가 컨트롤타워와 투자계획을 강력하게 만들어야 한다. 컨트롤타워로 발족한 대통령 직속 ‘2050 탄소중립위원회’가 자문, 심의 정도 역할에 그치지 않고 정책 실행력까지 갖도록 힘을 부여해야 한다.
탄소중립 R&D 투자를 위한 정부 예비타당성 조사 준비도 이제 시작하는데, 이런 속도라면 예산은 빨라도 2023년부터 집행된다. 속도를 앞당길 필요가 있다. 규모에 맞는 예산 투입도 필요하다. 과기정통부가 탄소중립을 위한 10대 R&D 프로젝트를 10년간 추진하는데 총 1조8000억원을 투입하겠다고 한다. 대략 1년에 과제당 180억원이 배정되는 것이다. 그러나 수소환원제철 기술 개발만으로도 1조8000억은 부족한 수준이다. 투자규모를 늘릴 필요가 있다.
◇신경호= 에너지부터 소재, 전체 산업구조까지 모든 것이 바뀌어야 한다. 에너지의 경우 신재생 에너지뿐 아니라 다양한 에너지원에 대해 가능성을 열어두고 포트폴리오를 만들 필요가 있다. 미국의 경우 2050년까지 원자력 발전을 늘릴 계획이라고 한다. 그린전력을 확대하고 수소 기술을 계속 개발하겠지만 그 사이 20~30년간 배출되는 탄소에 대한 해법도 찾아야 한다.
◇정진호= 교육과 수용성의 문제도 정말 중요하다. 기업의 비용부담 문제도 심각하다. 그런데 산업현장에서 만나는 해외 기업들의 움직임이 국내 기업들보다 훨씬 기민함을 느낀다. 자동차에 금속 대신 탄소복합소재를 쓰기 위해 독일과 일본 기업이 우리를 찾아온다. 이들 기업은 2030년까지 자동차용 금속을 CFRP(탄소섬유복합소재)로 전환하는 계획을 세우고 실행에 옮기고 있다. 수소경제 전략을 추진하면서 그에 맞춰 소재부품도 바꾸고 있다.
◇안경애= 탄소중립이 정부의 핵심 어젠다로 떠올랐고 국제 사회의 요구도 강해지고 있지만, 정부가 속도에 밀려 내용을 충실하게 준비하지 못하면 엄청난 부작용과 사후비용이 드는 만큼 처음부터 제대로 준비해야 한다.
특히 정책이 정부 내에서 강한 힘을 받으며 정책과 투자로 이어지려면 부처간 협업 부족, 현실성이 부족한 예타제도와 예산체계 등 해묵은 문제부터 개선해야 한다. 무엇보다 2050 탄소중립위원회가 4차산업혁명위원회의 전철을 밟지 않고, 보다 강한 실행력을 가진 조직으로 작동해야 할 것이다.
◇민동준= 탄소중립이라는 글로벌 어젠다는 국내 기업과 해외 기업간의 경쟁을 넘어 대한민국과 중국, 일본을 비롯한 세계 국가 간의 생존경쟁이라고 생각한다. 세계각국은 기술·특허·통상·표준규격·국경세·자원·탄소국경세·산업체 리쇼어링 정책을 수립하고 외교·기술·자본을 총동원한 전방위 경쟁을 전개하고 있다. 탄소중립 정책은 단순한 환경규제가 아니다. 국가 경쟁력 관점에서 에너지·외교·통상·자본 등이 연계된 국가전략을 수립해야 한다. 정부가 치밀한 전략 하에 기업과 민간·금융·대학·연구계 등이 참여하는 연대와 협력관계를 수립하지 못하면 우리나라는 ‘탄소중립발 죽음의 계곡’에 빠질 수밖에 없다.
◇박현= 우리나라 전체 산업에서 제조업 비중이 30%에 달한다. 선진국 중에서는 독일과 일본이 비교적 높다. 우리는 독일, 일본 모델을 지향해야 한다고 본다. 우리나라가 선진국으로 진입하는 과정에서 어떤 사회·경제구조를 가져가는 것이 바람직할 지 고민을 거듭해야 한다.
포스코는 내부적으로 숙고와 이사회 논의를 거쳐 작년 12월 11일 탄소중립 정책을 선언했다. 일본 철강사들도 작년말과 올해 탄소중립을 선언했다. 역대 철강 생산량 최고점을 기록한 2013년 이후 여러 개 고로를 폐쇄해 상당한 생산량이 줄어들어 온실가스 감축이 용이한 일본과, 견조한 생산량을 이어가는 우리나라 철강산업이 체감하는 감축 부담은 완전히 다르다. 우리 입장에선 생산을 줄여 가면서까지 탄소배출을 감축하는 것은 생각할 수 없다. 더 전향적이고 혁신적인 노력을 할 수밖에 없다.
◇장웅성= 미중 갈등과 기술패권 전쟁도 결국 탄소중립 전쟁으로 이어질 전망이다. 중국은 상당수 첨단기술에서 세계 1등을 차지하고 있다. 철강의 경우 세계적으로 1억명 이상을 직·간접적으로 고용하고 부가가치가 2조9000억달러에 달하는 산업이다. 자동차에 이어 두번째로 크다. 그런데 철강 1톤을 만들려면 2톤의 이산화탄소가 발생한다. 전체 산업의 이산화탄소 배출량 중 철강의 비중은 30%에 달한다. 그렇다면 철강이 사라지면 인류에 대안이 있는가. 알루미늄으로 자동차, 탄소섬유로 집을 만든다 하더라도 알루미늄은 1톤당 11.3톤으로 더 많은 이산화탄소를 유발한다. 철강이 심각한 것은 인류가 필요로 하는 양이 많기 때문이다. 즉, 아직 철기시대를 살고 있는 인류에는 대안이 없다. 철강은 리사이클 비중이 100%로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그런 상황에서 탄소중립 시대를 맞아 신철기문명의 패권경쟁이 시작됐다. 미중 갈등과 기술패권 경쟁이 격화되는데, 이 전쟁은 결국 탄소중립 전쟁으로 이어질 전망이다. 개별기업 차원의 경쟁력이 문제가 아니다. 기존 플레이어뿐 아니라 IT, 환경 등에 강점이 있는 새로운 플레이어들이 참여해 뭉쳐야 한다.
◇민동준= 탄소중립 전략의 성공여부는 전력화 단계를 거쳐 수소로 옮겨가는 필요충분 조건인 그린 에너지 전략 수립과 실천에 달려 있다. 국민 생활에 필요한 전력 외에 산업용 에너지를 전력화하려면 그린전력 공급능력이 현재보다 최소 3배 이상이 돼야 한다. 국가 구조를 통째로 바꿔야 하는 일이다. 현재 우리나라는 90일분 이상의 석유를 에너지원으로 비축하고 있으나, 전력화할 경우 전력 에너지 비축을 얼마나 할 수 있을까. 전력에너지 저장시스템과 전력형 동력체계를 구축하고, 천연가스를 수소로 변경하는 엄청난 그린 인프라 구축이 가능할까. 여기에다 현재 제조공정의 그린화에 따른 좌초 내지 매몰 비용은 아직 블랙박스 상태다. 정부와 산업계가 탄소중립을 위한 기술을 완성한다 하더라도 전기와 수소가 안정적으로 공급되지 않으면 소용이 없다. 그린 인프라 정책이 최우선 국가 전략이 돼야 한다.
◇박현= 탄소중립을 위한 에너지원으로 우선 신재생 에너지로 얼마나 수요를 충족할 수 있는지 살펴 봐야 한다. 탄소배출이 없는 타 에너지원도 고려해야 하며, 상용화에 먼 여정이 남아 있지만, 미래 에너지원 중 하나로 언급되는 핵융합 발전까지 장기적 관점에서 살펴 보아야 한다.
수소 확보전략도 구체적으로 세워야 하는데, 수소는 대부분 대량으로 쓰는 장소에서 만들어진다는 특징이 있다. 다른 에너지원보다 수송에 제한조건이 많기 때문이다. 수소를 암모니아로 전환해 국가간 수송을 하려는 시도도 그러한 고민에서 나온 것이다. 포스코의 경우 수소환원제철을 가동하려면 인근 수소단지로부터 대용량으로 파이프라인을 통해 공급받거나, 암모니아로 전환된 수소를 해외로부터 수송해 와야 할 것이다. 현재 쇳물을 만드는 원가를 고려하면 수소 가격이 지금보다 상당히 낮아져야 한다. 물론 전세계가 탄소중립에 대한 비용을 분담한다면, 수소의 경제성 확보 시기는 앞당겨 질 수 있을 것이다.
◇민동준= 2050년 우리나라의 전력수요량이 얼마나 되고, 풍력과 태양광 같은 신재생에너지가 이를 감당할 수 있을지 아직 의문이다. 이러한 점에서 우리나라의 에너지 환경에 최적화된 K-에너지 전략을 정밀한 수요예측과 분석을 통해 만들어야 한다. 신재생에너지 외에도 SMR(소형모듈원자로) 등 원자력 에너지 전략도 다시 들여다보고 세울 필요가 있다. 정부가 수립하는 국가 에너지 전략에 균형적 내용이 담기길 바란다.
◇정은미= 탄소중립은 차원이 다른 규모의 접근이 필요하다. 개별 기업이나 산업이 담당할 게 아니라 국가적 결의가 돼야 한다. 판을 바꾸는 사회적 투자가 이뤄져야 한다. 문제는 한국에 주어진 기간이 짧다는 것이다. 단기간에 하면서 유럽의 기준을 맞춰야 한다.
변화를 먼저 시작한 유럽은 R&D를 하고 비즈니스 모델을 만들어서 세계 시장에 진출하겠다는 전략이다. 그들과의 경쟁에서 밀리면 엄청난 시장 기회를 잃을 수 있다. 그들이 개발한 것을 가져와선 안 되고 우리가 경쟁력을 가져야 한다. 탄소중립은 디지털 전환과 같은 무게로 세계적인 산업과 경쟁판도를 바꾸는 새로운 룰이다. 거대한 변화를 맞아 우리 사회가 제대로 준비하고 산업계에도 요구해야 한다. 갑작스럽게 큰 변화를 해야 하다 보니 구멍이 너무 많다. 그 많은 재원을 누가 부담할 것인가. 투자규모 산정부터 재원조달 방안까지 구체화해야 한다.
◇장웅성= 산업계가 기술 개발을 하는 동안은 기업들에 부과하는 세금과 규제, 이산화탄소 포집량을 어디에 어떻게 배분할지를 정리해야 한다.
열심히 하는 곳은 어떤 혜택을 줄 지, 친환경 기술 개발은 어떻게 장려할 지를 구체적으로 고심해 질서를 만들어야 한다.
◇유영숙= 대한민국이 짧은 시간에 급성장하다 보니 꼼꼼히 챙기지 못한 부분들이 있다. 환경부도 환경오염 문제에 집중하느라 폐기물에는 상대적으로 신경을 많이 쓰지 못했다. 그렇지만 우리에겐 저력이 있으니 엄중하고 어려운 상황이지만 해쳐갈 수 있을 것으로 믿는다. 교육이 매우 중요하다. 시민사회와 어린이, 청소년 등에게 끊임없이 이야기해서 수용성을 높여야 한다. 전 국민이 이해하고 바뀌지 않으면 안 된다. 폐기물을 재활용해 만든 물건들을 거리낌 없이 구매하는 시민의 문화적 힘이 뒷받침돼야 한다. 전통적 석유기업인 쉘, BP 등은 주력사업을 석유에서 청정에너지로 전환하고, 2050년 탄소중립을 이루겠다고 속속 선언하고 있다. 또 정유가 아닌 종합화학회사로의 변화를 시도하고 있다. 기업은 탄소중립의 수단이자 가장 강력한 주체가 될 수 있다. 사회가 같이 힘을 모으면 성장과 탄소중립을 함께 해낼 수 있다.
◇민동준= 탄소중립 목표를 이루면서 산업 경쟁력을 유지하려면 규제 정책만으로는 한계가 있다. 100m를 15초에 뛰는 사람에게 12초에 뛰라고 강요한다고 되지 않는 것처럼 체계적이고 단계적인 적응이 필요하다. 탄소중립이란 글로벌 이슈는 우리나라로 하여금 세계 정치·외교 상의 새로운 포지셔닝을 요구할 뿐 아니라 도시·제조업·서비스·농수산업에 걸친 전 분야의 변화를 요구한다는 점에서 정부 내 거버넌스 확립과 체계적 실행을 위한 치열한 논의가 필요하다.
◇안경애= 국민들은 변화할 준비가 돼 있다고 본다. 그러나 하고 싶어도 구체적으로 어떤 것을 실천하면 될지 안내하는 매뉴얼이 부족하다. 개인이 일회용 컵 대신 텀블러를 쓰고, 배달음식 포장을 줄이는 식의 노력을 하는 것도 의미가 있지만, 규모의 변화가 일어나려면 이를 체계적으로 도와주는 장치가 필요하다. 일상생활부터 소비, 유통, 물류 등 생활 밀착형 탄소절감 방안과 매뉴얼을 만들어 공유하면 국민 공감대와 탄소절감 효과가 훨씬 올라갈 것으로 생각된다.
◇정은미= 주목할 점은 유럽과 중국은 탄소중립을 성장의 기회로 잡기 위해 비용이 아닌 투자로 접근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런 식으로 가면 우리에겐 비용밖에 남지 않는다. 사회적 인식을 바꾸고 기회를 잡아야 한다. 이를 현실화할 산업도 키워야 한다. 기업이 100톤에 달하는 시설물의 무게를 80톤으로 줄여주는 강종을 만들면 가격보상이 돼야 한다. 비용은 아무도 말하지 않고 가치만 얘기해선 안 된다. 또 시민사회가 탄소중립으로 가는 제품 생산과 소비, 순환에 대한 수용성을 갖춰야 한다. 신재생에너지를 쓰면 전기요금이 얼마나 오를지에 대해 아무도 말하지 않는다. 기업들에게 ‘얼마나 줄일 수 있느냐, 그러려면 우리가 뭘 지원하고 준비해야 하느냐’를 물어야 한다.
◇신경호=해양 플랑크톤이나 식물의 광합성을 통해 이산화탄소를 흡수하고, 비료, 고기능성 식품 등을 만드는 탄소 네거티브 산업도 적극적으로 육성할 필요가 있다. 탄소를 많이 배출하는 산업현장 주변에 그런 산업을 집중시켜 탄소를 낮추는 방법도 필요하다.
◇민동준= 산업은 주어진 환경에 최적화해서 적응하는 생물체다. 국가가 기업에만 숙제를 맡기고 규제를 할 경우, 기업이 생존을 위해 탄소중립에 유리한 나라로 이전을 고민하는 카본리키지 현상을 걱정해야 한다. 탄소중립 경제로 진화하려면 국가 전체의 구조를 바꾸고 에너지가 가진 불연속성의 한계를 정책·금융·기술 등으로 보완해야 한다. 불연속성을 메꾸는 것은 기술로만 되지 않는다. 지속적으로 국민을 설득하는 노력도 필요하다. 기업에 번 돈으로 알아서 하라고 하는 양비론적 정책도 써선 안 된다. 기업이 이 변화에 실패하면 지역경제와 일자리도 함께 타격을 받을 수밖에 없다. 탄소중립을 해내려면 절벽을 뛰어오르는 것 같은 퀀텀점프를 해야 한다. 30년은 긴 시간이 아니다. 시간이 너무 부족하다. 산업계가 탄소중립에 맞는 생산공정을 가동하려면 늦어도 2040년에는 기술개발과 검증을 끝내고 설비투자를 시작해야 한다.
◇장웅성= 철강산업에서 우리나라는 가칭 ‘K-기프트’란 브랜드로 도전을 준비하고 있다. 산업 사이클을 완전히 새로 만들어야 한다. 친환경 제철과 디지털 공정, 제조서비스를 융합해 산업구조를 진화시켜야 한다.
이를 위해선 전체 산업생태계 관점의 플랫폼 전략이 필요하다. 우리나라는 2007년 세계 최초로 파이넥스 제철공정을 개발해 상용화한 경험이 있다. 수소환원제철로 가려면 반드시 이 기술이 있어야 한다. 이 기술을 양산해본 곳은 우리밖에 없다. 패권경쟁에서 유리한 위치를 차지할 수 있는 가장 큰 무기다. 신철기시대의 패권을 쥘 수 있는 기회다. 이를 위해선 그린 방식으로 전력과 수소를 안정적으로 만들어서 공급하는 게 전제돼야 한다. 단순한 기술 개발의 문제가 아니라 포항의 지도가 달라져야 하는 일이다.
◇박현= 철강산업계는 수소환원제철이 탄소중립 시대의 궁극적인 해결책이다. 현실적으로 가능한가에 대한 논란을 거듭하기보다는 이제 구체적으로 실행에 옮길 때다. 2000년대 초반부터 관련 기술을 개발해 왔으며, 앞으로도 상당한 시간이 소요될 것으로 예상되지만, 관련 산학연의 힘을 모아 기술 개발에 최선을 다할 것이다. 관건은 양과 경제성을 갖춘 수소를 안정적으로 확보하는 것이다.
포스코의 연간 조강능력이 약 3800만톤인데 수소환원제철을 적용하면 환원에 연간 약 370만톤의 수소가 필요하다. 또 수소환원제철에서는 고온의 용광로에서 철광석을 환원시킨 후 녹이는 공정은 따로 진행하는데, 이 과정에 그린전력을 써야 한다. 사용전력용량 기준으로 3.7GW(기가와트)의 전력이 필요한데 상당한 규모다. 이러한 그린수소와 그린전력 인프라는 국가 차원에서 갖춰져야 한다. 국가적 공감대와 민·관의 합의를 거쳐 구체적인 로드맵이 수립돼야 한다.
◇민동준=전세계 70억명 이상이 1인당 연 200㎏의 철강을 쓰는데, 세계 최고 에너지 효율을 자랑하는 우리가 생산규모를 줄이면 우리보다 효율성이 떨어지는 국가가 더많은 이산화탄소를 배출하면서 철강을 생산하게 된다는 점을 기억해야 한다. 철강산업계의 책임은 이산화탄소 발생원 단위에서 다른 나라보다 비교 우위성을 유지하는 철강공정을 완성하는 것이다. 이러한 기술 경쟁은 향후 국가 경제를 좌우한다는 점에서 백척간두의 심정으로 해야 한다. 정치적 이슈로 연결돼선 안되고, 정부가 잘 조정된 정책과 프로그램, 금융정책 하에 일사불란한 수행을 해나가길 바란다. 우리나라 철강산업은 파이넥스라는 신제철공정을 20년에 걸쳐 개발하고 상용화 시킨 귀중한 경험이 있다. 기초연구 단계에서 200만톤 규모까지 완성하며 25년간 축적한 기술적 경험은 세계 어디에도 없는 엄청난 자산이라고 할 수 있다.
◇박현=관련 투자부담이 큰 만큼 글로벌 협력도 필수다. 포스코가 세계철강협회에 국제협력을 제안해 오는 가을에 국내에서 회의를 열 예정이다. 포스코는 2002년부터 전사 기후변화전략을 수립하고 구체적인 실천방안을 모색해 왔다. 최근 달라진 점이 있다면, 과거에는 국제사회와 정부가 기업의 기후변화대책에 주로 관심을 기울였다면, 이제는 투자사와 고객사가 요구하고 있다는 것이다. 포스코도 블랙록을 중심으로 구성된 TCFD(기후변화 관련 재무정보공개 협의체)의 활동을 주목하고 있는데, 기업이 기후변화 대책을 제대로 마련하지 않으면 지속 성장이 어려우므로 투자를 줄이겠다는 내용이다. 다수의 고객사들은 자사의 온실가스를 줄이는 정도에 국한하지 않고, 공급사들도 감축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자동차 강판의 경우 같은 강도에 더 가벼워서 연료소모가 적은 고장력 강판을 개발해서 공급해 달라는 요청이다. 이러한 고객사의 동향은 우리에겐 차별화된 경쟁력을 확보하는 기회가 될 수 있다. 회사는 그룹 탄소중립 통합 솔루션인 ‘e오토포스(eAutopos)’ 브랜드를 올해 초 선보였다.
◇민동준= 세계 최초로 상용화된 용융환원 공정인 파이넥스 공법을 기초연구 단계에서 200만톤급 상용화 설비에서 쇳물이 나오게 하는데 21년의 세월과 2조4000억이라는 엄청난 예산을 투자했다. 이러한 경험을 바탕으로 탄소중립에 필요한 수소환원제철 공정을 개발하려면 최소한 파이넥스 수준의 기술개발 프로젝트를 4개 정도 추진해야 한다. 20년 이상의 인내와 수조원 이상의 담대한 개발투자가 요구된다.
그런 점에서 정부가 현재 추진 중인 국가 탄소중립 기술개발 정책과제의 규모와 기간은 매우 걱정스러운 수준이다. 기간산업의 경우, 기초연구보다는 상용화를 위한 실증연구가 무엇보다도 중요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실증연구는 설비에 필요한 소재·공정제어·수명·생산성·정비 등에 걸친 신뢰성을 확보하는 종합 기술개발이란 점에서 엄청난 리스크면서 동시에 새로운 EPC(설계·조달·시공) 사업 기회를 제공한다. 참고로, 일본과 유럽의 경우 10톤 규모의 소형 수소제철 시험설비를 만드는 데 1억 달러 가량이 들었고, 기본 설비투자에만 3억~4억달러가 소요된다. 정부와 민간의 연대와 협력이 필요한 시점이다.
◇장웅성=국내 철강 시장은 100조 규모인데, 제철소를 만드는 시장은 수백조원 규모다. 투자를 해서 그 시장을 잡아야 한다. 대규모 설비를 만들어 가면서 그 기술을 완성해야 한다. 소꿉장난같이 해선 안 되고, 똘똘한 결과물을 제대로 만들어내야 한다. 이제 철강산업이 구조개편 대상의 낡은 산업이 아니고 스마트하고 친환경의 신산업으로 인식돼 20~30대 젊은 세대들이 비전을 가지고 이 산업에 들어오도록 기회와 시장을 만들어야 한다.
◇신경호= 변화를 위한 핵심은 시민사회가 탄소중립에 대한 수용성을 갖는 것이다. 그게 출발이고 그 위에 국가 인프라, 그린 전력, 기업 변화가 뒤따라야 한다. 또 탄소중립이 어느 날 갑자기 실현되는 게 아닌 만큼 관련 R&D를 지속적으로 추진하고, 탄소중립 이전에 누적되는 탄소를 처리하기 위해 리사이클링 등 생태계를 만들어야 한다.
제조공정 혁신뿐 아니라 CFRP(탄소섬유강화플라스틱) 등 리사이클링 산업도 중요하다.
◇정진호= 재활용 이슈는 단순히 이산화탄소 절감에 그치지 않고 환경적으로 매우 심각하고 중요한 문제다. 대부분의 폐기물이 매립 또는 소각되는데 환경적인 문제가 많다. 태우는 과정에 에너지를 많이 쓰고 이산화탄소도 많이 나온다. 이 문제를 해결하려면 최대한 리사이클링을 해야 한다.
◇민동준=탄소중립은 기술 개발이 아닌 산업 전환이다. A 지점에서 B 지점으로 계단이 아니라 엘리베이터를 타고 순간이동 해야 한다. 순차적 변화가 아니라 격렬한 전환이라는 의미다. 탄소중립으로의 접근은 생산 영역에서의 절감을 기본 전제로 추진해야 한다. 미국과 유럽같이 제품을 수입해서 쓰는 경우, 생산에 드는 이산화탄소 배출을 제조국으로 전가하는 착시현상이 주목된다. 제조와 소비 간의 이산화탄소 배출 관계를 제대로 봐야 한다. 친환경 제품에 대한 사회적 수용성도 아직 부족하다. 수용성을 높이기 위한 교육이 매우 중요하다. 진정한 탄소중립이 이뤄지려면 원하든 원하지 않든 간에 사회적 비용이 증가하며, 일정 부분을 국민들이 부담하겠다는 동의가 있어야 한다. 누구나 알 듯이 제조산업을 줄이면 이산화탄소 배출이 대폭 줄어들 수 있다. 그럼 뭘로 먹고 살 건가. 우리가 살 길은 제조업이라는 점에서 제조기업들은 진지한 기술 개발과 적응을 해 나가야 한다. 또 국가 주도로 정부·기업·시민 간에 합의를 하고 부담을 나눠지는 탄소중립 사회적 캠페인을 해야 한다. 탄소중립 앞에서는 모두가 죄인이다. 사회적 수용성을 전제로 국가 인프라를 구축해야 기업들이 경쟁력을 갖고 변화할 수 있다.
◇정진호=기업들이 바뀌는 것은 정부가 억지로 밀어붙여서 되는 게 아니다. 기업과 자본은 정책이 아니라도 시장과 소비자가 원하면 빨리 움직인다. 소비자의 인식이 기업을 움직이게 한다. 그래서 교육이 중요하다. 우리가 탄소섬유 복합소재를 재활용해서 소재를 공급하겠다고 하니 많은 기업들이 관련 요청을 해 온다. 자동차부터 신발, 가구 기업까지 소재 재활용 비율을 높이려는 수요가 높다. 그들은 우리에게 재생소재 프로젝트를 같이 하자고 제의해 온다. 탄소중립이 기업에 부담이 되기도 하지만 기회가 될 수도 있다.
◇민동준= 우리나라의 자원순환경제 체계를 탄소중립이란 큰 축을 중심으로 세워야 한다. 예를 들어 독일 자동차의 에코 설계개념을 도입해 자동차 부품의 재활용성을 높임으로써 선순환 구조를 정교하게 만들어야 한다.
◇안경애=대기업과 중견·중소기업간의 ‘탄소중립 대응격차’도 우려된다. 대기업들은 최근 ESG 경영에 속도를 내면서 공격적인 변화와 투자를 하고 있지만 상대적으로 투자여력과 정보가 부족한 중견·중소기업들은 움직임이 느릴 수밖에 없다. 정부 차원의 안내와 지원이 따라야 하고, 대기업이 자체 공급망 내에 있는 중견·중소기업을 주도하는 혁신생태계를 가동해 끌어가야 할 필요가 있다.
◇정은미=자원 재활용이 제대로 이뤄지려면 제품 생산부터 판매, 폐기, 수집, 재사용을 아우르는 사이클이 작동해야 하는데 환경부가 수집까지만 제도를 만들고, 수집한 것을 어떻게 재사용할지는 고민을 안 했다. 환경부가 재사용 정책까지 만드는 것은 한계가 있다.
여기에다 어떤 제품이 어떤 성분의 소재로 만들어졌는지 표기가 안 되는 것도 문제다. 수입자동차는 어느 부품이 무슨 소재로 만들어졌는지 명기돼 있어서 폐차해서 해체하면 재활용이 쉽다. 우리나라는 그게 안 돼 있다. 그것부터 돼야 재활용이 가능해진다. 생산자와 소비자가 다 알고 체계적으로 재활용이 이뤄질 수 있어야 한다.
◇민동준=과자를 사면 봉투에 어떤 재료로 만들었는지 다 쓰여 있다. 그와 마찬가지로 TV 같은 가전제품도 부품별, 모델별로 구리 등 어떤 성분이 얼마나 들어갔는지 표기해 주면 수거업자는 쉽게 계산이 될 것이다. 기업에는 기회가 만들어질 수 있다.
정리=안경애기자 naturean@dt.co.kr
사진=박동욱기자 fufu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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