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U의 탄소섬유 규제 철회, 변화의 출발점 돼야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유럽위원회 위원장이 2025년 3월 3일 벨기에 브뤼셀에서 열린 유럽 자동차 산업의 미래에 관한 전략적 대화 일환으로 유럽 자동차 업계 대표들과 회의를 마친 후 연설하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유럽연합(EU)이 자동차 산업에서 탄소섬유 사용을 금지하겠다는 방침을 발표했다가 최근 이를 철회, 관련 업계에 큰 파장을 일으켰다. EU는 탄소섬유의 유해 가능성과 재활용 인프라 미비를 이유로 강력한 제재를 추진했지만, 일본과 한국의 주요 제조사뿐 아니라 완성차 업계 전반의 거센 반발에 직면했다. 결국 계획을 보류했지만, 문제의 본질은 여전히 남아 있다. EU가 전 세계 소재 산업에 던진 메시지는 명확하다. 아무리 성능이 뛰어난 소재라도 환경 영향, 안전성, 재활용 체계까지 포괄적으로 고려하지 않으면 유럽 시장에서 설 자리를 얻기 어렵다는 것이다. 이는 산업 전반에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다.

탄소섬유는 가볍고 강도가 높아 차세대 친환경 산업의 핵심 소재로 꼽힌다. 그러나 제조 과정에서 막대한 에너지가 소모되고, 복합재 특성상 재활용이 어려운 게 문제다. 친환경 산업을 지탱하는 동시에 또 다른 환경 문제를 야기할 수 있다. EU가 규제 추진 과정에서 주목한 것도 이러한 모순이다. 장점은 분명하지만, 재활용과 환경적 부담을 고려한 규제와 정책이 필요하다는 점에서 EU의 입장 변화는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EU의 규제는 환경 문제를 넘어 전략적 산업정책의 성격을 띤다. 현재 이 시장은 일본과 한국 기업이 주도하고 있으며, EU는 지역 내 소재 자립을 강화하고, 지속가능한 공급망을 확보하려 한다. 이번 발표와 철회는 시작에 불과하다. EU는 자국의 소재 산업 경쟁력을 강화하고, 장기적으로 탄소섬유에 대한 더 엄격한 규제를 도입할 가능성이 크다.

정부와 산업계는 탄소섬유 산업의 지속 가능성을 확보하기 위해 발 빠르게 대응해야 한다. 현재 열분해 방식은 에너지 소모와 재생률 측면에서 한계를 드러내고 있으며, 이를 해결하려면 화학적 재활용을 통한 순환자원화 강화가 필요하다. 특히, 순환자원화 가능 설계가 반영된 새로운 에폭시 수지의 적용도 대안으로 부각되고 있다. 이러한 기술은 탄소섬유의 재활용 가능성을 높이고, 환경에 미치는 영향을 최소화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할 것이다. 정부도 장기적 정책 지원과 연구개발 투자에 나서야 한다.

EU의 규제 철회는 단순한 위기 회피가 아니다. 더 엄격한 지속 가능성 기준이 다가오고 있다는 신호다. EU의 철회는 큰 변화의 시작을 알리는 것이며, 앞으로 더 강력한 정책과 규제가 등장할 가능성도 높다. 이는 탄소섬유 산업에 새로운 성장 전략을 모색할 기회를 제공하는 동시에 더 큰 도전 과제를 안겨줄 것이다. 탄소섬유 산업은 기술 혁신과 지속 가능성을 중심에 두고 새로운 성장 전략을 모색해야 하며, 더욱 과감하고 책임감 있는 발전을 위한 준비가 필요하다.











– 고문주 건국대학교 화학공학부 교수

기사출처. 한국일보 기고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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