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30일 오후 경기 화성 양감면에 위치한 카텍에이치 화성공장.
‘리사이클링 라인2’라는 문패가 달린 공장 내부로 들어서자 가로·세로 2m가 넘는 대형 드럼세탁기 모양 기계 5기가 작동되고 있었다. 기계 안에서는 폐 CFRP(탄소섬유 강화플라스틱) 부스러기가 물, 첨가제와 섞여 마치 빨래를 하듯 돌아가고 있었다.
2017년 설립된 스타트업 카텍에이치는 물에 저렴한 첨가제를 더한 화학적 공법으로, 100℃ 이하 저온과 대기압 환경에서 폐 CFRP에서 탄소섬유를 95% 이상 회수하는 친환경 재활용 기술을 개발했다. 일본·미국·유럽 등 세계적인 기업들이 CFRP 재활용 기술을 쓰고 있지만 600℃ 이상의 고온에서 태우는 열소각법을 이용하다 보니 환경오염과 높은 비용 문제가 있었다. 국내에서는 관련 기술이 없다 보니 제조공정 등에서 나오는 CFRP 스크랩을 전량 소각 매립해 왔다.
카텍에이치는 2017년 KIST(한국과학기술연구원)로부터 친환경 CFRP 재활용 기술을 이전받아 4년간 기술 완성도를 높이고 양산공정을 개발해 왔다. 화성공장에서 이달 중순 양산을 시작한다.
정진호 카텍에이치 대표는 “CFRP는 우주·항공, 무기, 자전거 등에 쓰이던 것에서 최근 자동차, 수소연료 저장탱크, 풍력발전기 터빈 등으로 활용처가 넓어지고 있다”면서 “이 가운데 탄소규제가 본격화되면서 기업들이 친환경적인 재활용 해법 찾기에 매달리고 있다”고 말했다.
CFRP는 무게가 철의 4분의 1에 불과하면서 강도는 철의 5배 이상인 초고강도 섬유로, 무거운 철을 대체하는 경량화 소재로 수요가 커지고 있다. 그러나 가격이 비싸고 폐기 시 심각한 환경오염을 일으키는 게 문제였다. 세계 CFRP 시장은 연 평균 8.2% 성장해 2020년 기준 18만톤, 약 42조원 규모로 커졌다. 탄소섬유 시장은 연 20% 성장해 2020년 기준 13만~14만톤, 5조원 규모에 달했다. 재생 탄소섬유 시장은 CFRP 시장의 10분의 1 정도 규모로, 3~4조 규모로 추산된다.
CFRP 재활용 시장은 도레이, 카본컨버전스 등 해외 기업이 열소각법 방식으로 주도하고 있지만 오염과 고비용, 낮은 회수율과 품질이 한계였다. 카텍에이치가 개발한 기술은 CFRP 폐기로 인한 환경오염 문제를 해결하면서, 재활용 탄소섬유를 통해 공급비용을 낮춰주는 일거양득의 효과가 있다.
정 대표는 “우리는 고온에서 태우는 대신 낮은 온도의 물과 첨가제를 이용해 높은 품질의 탄소섬유를 더 많이 회수하는 기술을 완성했다”면서 “탄소섬유 회수율이 90% 이상이고 원사 대비 품질이 90% 이상으로, 각각 85% 이하, 70% 이하인 열소각법과 큰 차이가 있다”고 설명했다.
비용 경쟁력도 우수하다. 탄소섬유 1㎏을 재활용하는 데 드는 비용이 10달러 이하로, 열소각법의 15~20달러에 비해 훨씬 저렴하다. 초기 설비투자 비용은 500톤 당 10억원으로 10분의 1, 유지보수비는 20년 당 10억원으로 4분의 1 수준이다.
카텍에이치는 2019년 연 200~300톤 처리 규모의 연속공정 라인을 화성공장에 설치한 데 이어 지난해에 연 1500톤 처리 규모의 배치공정 라인을 추가했다. 반도체 업계 엔지니어 출신인 김종일 기술연구소장을 중심으로 KIST와 기술협력을 이어가는 한편 소재기업, 벤처캐피털 등의 투자를 받아 공장을 증설하고 있다. KIST도 2대 주주로 지분을 실었다.
정 대표는 “CFRP 재활용을 고민하는 국내·외 기업들이 회사로 폐 복합재를 보내 처리 가능 여부를 문의해 오고 있다”면서 “이달 중 화성공장에서 양산이 시작되면, 이미 확보한 물량만 해도 연 50억원 이상의 매출이 기대된다”고 말했다.
현대자동차가 수소연료 저장탱크, 한국항공우주가 수리온 헬기 등 제조과정에 나오는 스크랩, 한국카본이 탄소섬유 복합소재 재활용을 의뢰해 협업을 진행하고 있다. 일진, 롯데케미칼, 대한항공, 한화큐셀, 일신화학공업 등 국내 기업뿐 아니라 솔베이, 미쓰비시케미칼, 카본레볼루션 등 해외 기업과의 협력도 논의 중이다. 정 대표는 “풍력터빈 블레이드 폐기물만 해도 2050년 4300만톤에 달해 처리문제가 커질 전망으로, 해외 기업들이 재활용 방안을 요청하고 있다”면서 “해외 기업들이 현지 공장 설립을 요청해와 미국, 중국, 유럽, 호주 등에 법인과 공장 설립을 추진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회사는 전국 장수에 대규모 양산공장 설립도 준비 중이다. 정부 인허가를 거쳐 올해부터 2023년까지 연 4500톤 처리 규모를 확보할 계획이다. 2024년 기준 총 5000~6000톤 처리 용량을 확보해 국내외 수요를 소화한다는 구상이다.
정 대표는 “연 처리량 6000톤을 확보하면 세계 최대 탄소섬유 리사이클링 회사로 올라설 수 있다”면서 “재생 탄소섬유로 된 카본 얀(Yarn·방적사)도 생산해 부가가치를 키우고, 친환경·저비용 강점을 무기로 성장하는 시장에서 게임 체인저가 되겠다”고 말했다.
윤석진 KIST 원장은 “탄소중립 실행을 위해 KIST를 비롯한 공공기관의 역할이 매우 중요하다. 그린수소를 비롯한 탄소중립 원천기술 연구에 매진하는 동시에 연료전지, 이차전지 등 그동안의 연구성과를 산업계에 이전해 확산하는 데 집중하겠다”면서 “이를 통해 전체 산업을 저탄소 구조로 바꾸는 기술적 기반을 제공하겠다”고 말했다.
폐 CFRP를 리사이클링해 만든 재생 탄소섬유. 카텍에이치 제공
안경애기자 naturean@dt.co.kr